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알싸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밤꽃입니다. 여우꼬리처럼 길고 북실북실한 모습이 일반적인 꽃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지만 가을에 알밤으로 태어날 밤꽃입니다. 밤꽃(밤나무 꽃)이 피는 계절은 보통 초여름, 6월경입니다. 이때는 산과 들, 특히 밤나무가 많은 지역에서 밤꽃 특유의 강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 퍼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은 밤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밤나무의 생육 상태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가늠할 정도로 밤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밤꽃이 피는 계절
밤꽃은 수꽃과 암꽃이 한 나무에 피지만, 수꽃은 길게 늘어진 연노란빛 여우 꼬리 모양으로 눈에 띄고, 암꽃은 수꽃의 기부나 가지 끝에 작게 달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밤꽃은 그 향기가 독특하고 강해서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곤 하지만, 한여름이 오기 전, 계절의 경계를 알려주는 자연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밤이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 과정
- 개화기 (6월)
- 수꽃이 먼저 피며, 바람에 의한 풍매화로 암꽃이 수분됩니다.
- 수분이 성공하면 암꽃의 자방이 서서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 수정 후 열매 맺기 (7월~8월)
- 수정된 암꽃은 점차 커지면서 밤송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 밤송이는 처음엔 연두색이고 부드러우며 점점 가시가 돋습니다.
- 밤송이 속 열매 성장 (8월~9월)
- 안쪽에서 밤알이 자라며 전분을 축적해가고 껍질이 단단해집니다.
- 한 밤송이 속에 1~3개의 밤알이 들어 있습니다.
- 성숙기 (9월~10월)
- 가을이 되면 밤송이는 갈색으로 변하고 스스로 벌어지며 밤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 이 시기에 수확이 이루어집니다.
밤꽃이 피는 시기의 낭만?
모든 꽃들은 아름답다는 법칙을 깬 꽃이 밤꽃입니다. 징그러운 애벌레 같이 생긴 것이 밤나무에 매달린 모습은 해마다 밤나무 꽃을 보아왔어도 언제나 낯설기만 합니다.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밤꽃은 낭만적이기 보다 밤 재배 농가들의 치열한 삶입니다. 밤 수확과 가격 사이에 매달린 밤재배 농가들의 생존입니다. 밤꽃은 진한 향기로 꿀벌들을 끌어들이는 꽃입니다. 밤나무 아래 양봉 농가들까지 알싸한 밤꿀을 한 몫 단단히 챙기는 때입니다. 밤꽃 향기가 온 마을을 잠식해가는 이 계절은 밤 재배 농가들은 밤나무와 선전 포고를 의미합니다. 살충제도 살포해야 하고 퇴비도 듬뿍 뿌려서 가을에 풍성한 밤 수확을 기대하는 시기입니다.
마무리
밤꽃이 피는 계절은 여름으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만나는 짧고 인상 깊은 순간입니다.
밤은 단단한 껍질 속에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여름의 햇살을 품고, 가을이 되어 비로소 그 속을 내어주죠.
밤꽃의 향기와 밤 열매의 여정은, 자연이 들려주는 계절의 서정시이자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전원에 풍기는 밤꽃 향기를 낭만처럼 붙잡아 두고 싶은 밤입니다.